같은 광장, 다른 마음 - 틈의 사유
틈의 사유
3월 21일 저녁. 광화문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공연 관객석에는 2만 2000여 명이 자리했고, 주최 측 추산 광장 전체에 10만 4000명이 운집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광장에.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같지 않았다.
어떤 이는 3년을 기다렸다. 어떤 이는 지하철이 서지 않아 불편했다. 어떤 이는 길을 잃었다. 어떤 이는 생애 처음으로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전혀 다른 경험이 공존했다.
그 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기다린 사람들의 시간
방탄소년단은 3년 9개월의 군 복무라는 긴 공백을 마치고 7인 완전체로 귀환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음악 이벤트를 넘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으로 동시에 생중계되는 국가 브랜드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3년 9개월. 그 시간 동안 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렸다.
러시아에서 서울로 유학 온 한 팬은 "BTS가 내가 여기 온 이유"라며 "이를 계기로 한국 역사와 문화, 음식, 스포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아이돌 그룹을 따라 언어를 배우고, 역사를 공부하고, 나라를 옮긴 사람.
그 기다림이 얼마나 두텁게 쌓여 있었는지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광장 바깥에는 전혀 다른 온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공간, 불편했던 사람들
서울시는 공연 당일 광화문역, 종각역, 시청역, 경복궁역 등 도심 주요 역사 무정차 통과와 출입구 폐쇄 등 강도 높은 통제 방안을 시행했다. 경찰은 3월 16~21일 광화문광장 일대 집회를 신고한 일부 단체들에 제한 통고를 내렸고, 시민단체들은 사기업 행사를 이유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그날 오전부터 다른 경로를 찾아야 했다.
집회를 준비하던 단체들은 장소를 쓸 수 없게 됐다.
취재를 나간 기자들은 넷플릭스와 하이브가 공연 전체 생중계 금지, 업로드 영상 분량 제한 등 과도한 취재 제한을 걸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같은 날, 같은 공간 주변에서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불편하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었다.
이것은 BTS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현상이 도시에 내려앉을 때 그 무게가 고르게 분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무게
광화문은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현재가 겹쳐지는 상징적인 장소다. 그런 공간에서 BTS가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처음부터 단순한 컴백 무대 이상의 의미를 품고 시작했다.
아리랑. 130여 년 전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불렀던 노래.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일곱 명의 청년들이 선택한 이름.
그 노래가 광화문에서 울려 퍼졌다.
수만 명이 동시에 같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한국어 가사가 그대로 울려 퍼졌다. 해외 팬들이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장면이 다수 포착됐다.
언어도, 국적도,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멜로디를 함께 부르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틈이 좁아졌다.
틈은 어디에 있었나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했다.
열광과 불편함. 설렘과 박탈감. 연결과 단절.
이것이 거대한 문화 현상이 만들어내는 불가피한 틈이다.
그런데 이 틈을 바라볼 때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공연이 끝난 후 팬덤 아미는 자발적으로 광장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국적을 초월한 팬덤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시민적 책임을 실천한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 그중 일부는 공연이 끝난 뒤 불편을 만든 그 공간을 스스로 정리했다.
틈을 만든 사람들이 틈을 좁히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이것이 틈의 가능성이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마음들
거대한 현상은 언제나 틈을 만든다. 설레는 사람과 불편한 사람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그 틈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다양한 감정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한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살아있는 사회의 증거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틈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열광하는 사람도, 불편했던 사람도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 기억이 틈을 좁혀나가는 가장 조용한 힘이 된다.
우리의 삶은 항상 틈을 필요로 한다.
오늘의 틈
같은 광장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돌아서야 했다.
그 다른 감정들이 부딪히는 자리. 그것이 오늘의 틈이다.
그 틈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같은 공간을 더 넓게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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