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의 사유

권리의 충돌은 왜 합의로 이어지지 않을까 - 틈의 사유

Viaschein 2026. 3. 17. 10:38

권리의 충돌은 왜 합의로 이어지지 않을까

- 서로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틈에 대하여

[틈의 사유]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말한다. "이건 내 권리야."

다른 사람도 말한다. "이건 내 권리야."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둘 다 물러서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권리가 충돌할 때

 

노키즈존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회는 두 편으로 나뉘었다.

아이를 데려갈 권리. 조용한 환경을 누릴 권리.

둘 다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둘은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충돌은 노키즈존에서 끝나지 않았다. 노 20대 존, 노 교수 존. 권리의 언어는 점점 더 많은 자리로 퍼져나갔다.

연령대로 차별하는 것을 넘어 직업과 종교까지 차별 기준이 세분되고 있다. 차별 대신 절충하는 평화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왜 그럴까.

권리의 언어가 퍼질수록 왜 합의는 더 멀어지는 걸까.



 

권리라는 언어의 구조

 

여기에 틈이 있다.

권리는 본래 '나를 지키기 위한 언어'다. 침해당한 자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권리의 언어가 충돌할 때, 묘한 일이 벌어진다.

나의 권리를 말하는 순간, 상대의 권리는 자동으로 위협이 된다.

'내가 옳다'는 말이 '네가 틀렸다'는 말과 같아진다.

이 구조 안에서는 대화가 어렵다. 양보는 패배처럼 느껴지고, 합의는 내 권리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갈등 항목에서 세계 최상위를 기록하면서도 갈등 관리 수준은 최하위에 머문다는 분석이 나온다.

갈등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막혀 있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기준이 없는 자리에서

 

왜 권리의 충돌은 합의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나의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는 아직 공통의 기준을 갖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냉전구도 하의 이념 대립, 압축적 산업화의 부작용, 폐쇄적 문화 전통 등으로 숱한 갈등을 체험해왔다. 최근에는 고조되는 불확실성과 계급적 균열로 '갈등공화국'으로 지칭될 만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한 사회는 권리를 누릴 여유보다 권리를 말할 언어를 먼저 갖게 되었다.

오랫동안 참아온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모두가 동시에 말하기 시작하면, 누구의 말을 먼저 들어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는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아직까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없는 2개국 중 하나다. 정당 간 심각한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이를 통과시키려는 노력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기준이 없는 자리에서 권리의 충돌은 끝나지 않는다.

 

 

틈을 바라보는 것

 

그렇다면 이 충돌은 나쁜 것일까.

틈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읽힌다.

권리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갈등이 반복된다는 것은 아직 사회의 기준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틈이 나타난다.

우리는 갈등을 문제로만 바라보지만, 어쩌면 갈등은 사회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합의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권리와 당신의 권리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방식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이 길고 느리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다.

 

 

권리가 충돌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질문은 다음이 아닐까.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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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틈

권리의 충돌은 나쁜 신호가 아닐 수 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동시에 말하기 시작하면, 기준이 없는 자리에서 충돌은 끝나지 않는다.

합의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권리와 당신의 권리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방식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그 질문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이미 틈을 건너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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