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의 사유

법이 바뀌면 사람도 바뀔까 - 틈의 사유

Viaschein 2026. 3. 19. 14:36

규칙이 바뀐다고 해서 그 규칙을 대하는 마음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어릴 때 교실에서도 그랬다.

선생님이 규칙을 새로 정하면 아이들은 일단 그 규칙을 따르는 척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없는 틈을 노린다.

그렇게 놀이처럼 규칙을 어기기 시작한다.

기업도 사람이 모인 곳이다.

그 본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생님이 규칙을 정하면 아이들은 일단 그 규칙을 따른다. 그리고 선생님이 없는 틈을 노린다.

 

법이 말하는 것

 

2026년 3월 주주총회는 2025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된 상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첫 번째 주주총회다.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 확대, 독립이사 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강화 등 지배구조의 핵심 요소가 바뀌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 기존에는 이사가 '회사'에 충실하면 됐다. 개정 후에는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대주주만을 위한 경영 결정에 제동을 거는 장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강화 —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대주주가 자신에게 유리한 감사위원을 심어두는 관행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독립이사 제도 도입 — 회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킨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거수기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다.

 

쉽게 말하면 이사는 이제 회사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그것이 법이 새로 요구하는 것이다.

말로 들으면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것이 법 조항으로 명문화됐다는 사실이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선제 정비와 방어적 기제. 두 단어가 나란히 놓인 흥미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기업이 반응하는 방식

2026년 정기주주총회는 기업들이 법적 정합성을 맞추려는 선제 정비와 규제 적용 전의 방어적 기제가 혼재하는 시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제 정비'와 '방어적 기제'. 두 단어가 나란히 쓰였다는 게 흥미롭다.

어떤 기업은 진심으로 바뀌려 한다. 어떤 기업은 바뀐 척 하면서 방어선을 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사 임기를 연장하거나 이사회 정원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수 주주 추천 후보가 진입할 여지를 줄이기 위한 선제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법의 취지는 소수 주주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법을 피해가기 위한 움직임이 법 시행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다.

제도와 현실 사이에 틈이 생기는 순간이다.

 

 

틈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법은 행동을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까지 규정하지는 못한다.

기업 문화라는 건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만들어온 습관이자 감각이다.

"원래 이렇게 해왔어." "여기서는 다 그래." "그게 현실이야."

이런 말들이 살아있는 조직 안에서 법 조항 하나가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하다 못해 조그마한 기업도 원래라는 말을 달고 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제도 대응을 넘어 기업 경영 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과거 주주총회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견제 장치로 기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하고 있다"는 말에는 아직 변화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미완성의 공간. 법이 가리키는 방향과 실제 기업이 움직이는 방향 사이의 간격.

오늘의 틈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견된다.

 

법이 가리키는 방향과 실제 기업이 움직이는 방향 사이의 간격. 오늘의 틈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견된다.

 

 

문화는 왜 법보다 느릴까

사람은 두 가지 이유로 행동을 바꾼다.

하나는 규칙이 바뀌어서, 다른 하나는 마음이 바뀌어서다.

규칙으로 인한 변화는 빠르지만 얕다.

반면 마음으로 인한 변화는 느리지만 깊다.

지금 기업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대부분 첫 번째 종류다.

법이 요구하니까 바꾼다. 감시받을 수 있으니까 바꾼다.

그것도 변화다.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변화가 문화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규칙이 내면화되어 아무도 보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선택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제도와 문화 사이의 틈이 좁아진다.

그 틈의 간격이 곧 사회적 합의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시작은 됐다

 

완벽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그러나 법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틈을 만들어낸다.

그 틈으로 새로운 질문이 들어온다.

"우리 회사는 왜 이렇게 운영되고 있지?" "주주의 이익을 정말 고려하고 있는가?" "형식을 넘어 실질이 바뀌고 있는가?"

이 질문들이 조용히 쌓이는 곳에서 문화의 변화는 천천히 시작된다.

법이 먼저 길을 낸다. 그리고 사람이 그 길을 걷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의 차이가 지금 우리가 바라봐야 할 틈이 아닐까.

 

법이 먼저 길을 내고 사람이 그 길을 걷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의 차이가 우리가 바라봐야 할 틈이 아닐까.

 

오늘의 틈

법은 바뀌었다.

그런데 법이 바뀐다고 사람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제도가 가리키는 방향과 몸에 밴 습관이 향하는 방향 사이.

그 간격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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