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의 틈 - 사람은 왜 쉬어도 피곤할까?

심리의 틈 — 사람은 왜 쉬어도 피곤할까?
글 · 틈의 기록 | 2025.11.27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쉬고 있을 때도 쉬지 못한다.”
—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Ⅰ. 쉬었는데도 피곤한 이유 — 마음과 몸의 리듬이 어긋날 때
우리는 분명 쉬었음에도 “왜 이렇게 피곤하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몸은 누워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일과 걱정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몸의 휴식과 마음의 휴식 사이에는 늘 작은 틈이 존재한다.
이 틈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생긴다. 침대에 누워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떠올리거나, SNS를 보며 비교와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간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는 몸은 쉬었지만, 마음은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하루를 살아간다. 피로의 근원은 그 마음의 과부하에서 시작된다.
Ⅱ. 인지적 과부하 — 머릿속의 ‘계속되는 일’이 주는 피로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지친 상태를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로 설명한다. 정보가 너무 많아 뇌가 계속 처리해야 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휴식을 취해도 피로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주의가 쉬지 못하면, 몸도 회복되지 않는다.”
— 대니얼 레비틴(Daniel Levitin), 『정신과 작업의 조직』
스마트폰 알림, 메신저 대화, 미해결 업무, 선택해야 할 수많은 결정… 이러한 요인들이 우리의 주의를 계속 붙잡아두며 뇌를 ‘한 번도 꺼지지 않는 엔진’처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쉬고 있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 일을 계속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한다.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Ⅲ. 감정적 피로 — ‘느낌’ 또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일 때 또 하나의 피로가 찾아온다. 바로 감정적 피로(emotional fatigue)다.
우리는 하루 안에서 수많은 감정을 겪는다. 불안, 비교, 걱정, 눈치, 사소한 상처, 책임감, 기대… 이러한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일수록 더 쉽게 지친다.”
—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
특히 감정을 억누르는 상황이 반복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피로가 누적된다. 이는 단순한 ‘스트레스’와는 다른, 감정이 채 표현되지 못해 쌓여가는 잔여 피로다.
Ⅳ. ‘진짜 휴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느슨해지는 것
피로를 풀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의를 풀어주고, 감정을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휴식을 권한다.
1) 목적 없이 걷기 —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 회복
2) 멍 때리기 — 감정 처리 공간 확보
3) 디지털 휴식 — 주의 회수
4) 감정 언어화 — 마음의 압력 해소
이는 ‘아무것도 안 하기’와는 다르다. 붙잡혀 있던 마음을 잠시 풀어주는 행위, 그것이 진짜 휴식의 핵심이다.
Ⅴ. 결론 — 피로의 정체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피로를 ‘몸의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먼저 지치고, 몸이 따라 지친다.
쉬어도 피곤한 이유는 명확하다. 몸은 잠시 멈췄지만, 마음은 멈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로는 단순히 시간을 들여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회수하고, 감정을 돌보고, 주의를 내려놓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풀린다.
“마음이 쉬면, 몸은 자연스레 뒤따라 쉰다.”
— 존 카밧진(Jon Kabat-Zinn)
© 2025 틈의 기록 | 일상 속 마음의 피로를 비추는 ‘심리의 틈’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