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의 일기 — 한 달의 시작에서 발견한 작은 틈

글 · 틈의 기록 | 2025.12.01

“새로운 달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틈이다.”

Ⅰ. 시작은 늘 조용한 틈에서 온다

한 달이 다시 시작되었다. 달력의 숫자가 바뀐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정리되거나 마음속 균열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반복되는 시작에서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틈을 발견한다.

아침 창가에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 출근길 지하철의 온도, 커피 첫 모금의 미묘한 따뜻함— 별것 아닌 감각 속에 새로운 흐름의 ‘단서’가 숨어 있다.

그 단서는 크지 않다. 다만, 내가 오늘을 어제와 다르게 바라보도록 아주 조용하게 방향을 틀어줄 뿐이다.

한 달의 시작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정리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 달, 계획을 세우기보다 틈을 관찰하기로 했다.

일상은 늘 바쁨과 여유가 교차한다. 그리고 그 사이, 아주 짧은 순간— 일을 시작하기 전의 망설임, 메시지를 보내기 전의 숨 고르기, 퇴근 후 집 앞에서 문을 열기 전의 정적— 그 틈들은 내 마음의 방향을 알려주는 작은 표지판이다.

이번 달 나는 그 표지판들을 조금 더 신중하게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숨결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어디에서 고요해지는지** 알아보고 싶어서다.

어느 날은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지만, 또 어느 날은 시간이 조금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느린 날에 주목한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마음이 서두르지 않는 날. 생각이 엇나가지 않고 작은 행동에도 온기가 스며드는 날. 이런 하루는 삶이 내게 조용한 틈을 건네는 방식 같다.

우리는 흔히 ‘의미 있는 일’을 좇지만, 정작 의미는 이런 틈에서 고이 쌓인다. 하루의 속도가 달라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멈추었던 마음의 결이 드러난다.

요즘 들어 조금 더 주의 깊게 느끼는 것이 있다. 변화는 크게 오지 않고, 틈에서 자란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마음가짐도, 새로운 습관도, 새로운 시각도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일을 미루고 싶을 때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는 몇 초, 답장을 서둘러 보내려다 다시 문장을 고쳐 쓰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 산책을 택하는 저녁— 이런 미세한 틈들이 쌓여 생각의 방향과 감정의 리듬을 바꿔 놓는다.

“틈은 삶의 균열이 아니라, 변화가 스며드는 입구다.”

한 달의 시작이 특별한 이유는 새로운 ‘의지’를 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다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달도 거창한 다짐 대신 작은 틈을 기록하려 한다. 그 틈들이 언젠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는 걸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언제나 조용하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자신을 세워간다. 한 달의 첫 페이지에서 발견한 작은 틈이 이번 달을 어떤 색으로 채울지, 나는 그저 천천히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