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틈 — 절대와 상대, 진리의 틈

글 · 틈의 기록 | 2025.11.05

“진리는 언제나 절대의 형태로 말해지지만, 늘 상대의 자리에서만 이해된다.”
— 무명의 철학자에게서

Ⅰ. 절대의 유혹, 진리의 신화

인간은 오래도록 ‘절대’를 믿어왔다. 모든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 변하지 않는 진리를 향한 동경 말이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그것을 이데아라 불렀고, 신학자들은 신의 뜻이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절대는 언제나 ‘누군가의 관점’ 안에서만 존재했으며, 진리는 늘 해석의 언어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냈다. 진리라 믿은 것들은 사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설명하려는 또 하나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대 철학이 던진 이 문장은 절대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인간의 인식은 고정된 진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늘 관계와 맥락 속에서 의미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장(場)이다.

한 사람의 믿음은 다른 이에게는 환상일 수 있고, 한 시대의 진리는 다음 세대의 오류로 남는다. 그렇게 진리는 절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만, 결국 상대의 자리에서만 이해된다.

진리는 완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살아 있다. 우리가 사유하고 질문하는 한, 진리는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남는다.

철학은 그 미완의 문장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틈을 들여다본다. 절대와 상대의 경계, 확신과 회의 사이의 흐릿한 지점에서 인간의 사고는 비로소 ‘깨어난다’.

우리가 진리를 의심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철학이 태어난다. 의심은 부정이 아니라 ‘탐구의 다른 이름’이다. 절대적 확신의 시대가 끝나면, 남는 것은 질문뿐이다.

그 질문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틈이 없다면 사유는 멈추고, 완전함 속에서는 새로운 의미가 태어나지 않는다. 결국 진리는 완벽함이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를 갱신해 가는 ‘운동’이다.

절대와 상대는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은 서로를 전제하며 존재한다. 절대는 상대의 한계를 통해 의미를 얻고, 상대는 절대의 그림자를 통해 방향을 잡는다.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없다. 절대만을 믿으면 닫히고, 상대만을 믿으면 흩어진다. 그 사이의 틈, 바로 그 불안정한 자리에서 인간은 생각하고, 다시 묻는다.

진리는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 늘 수정되고 해석되는 열린 이야기다. 그 틈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서로 다른 관점이 부딪히며 새로운 빛을 만든다.

절대와 상대는 대립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두 개의 창이다. 그 사이의 틈에서, 우리는 진리의 온도를 느낀다.

“진리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의 형태로 우리 곁에 남는다.”
— 틈의 기록

철학의 틈은 절대를 잃은 시대의 사유이자, 상대 속에서 다시 절대를 찾아가는 인간의 여정이다.

철학의 틈 — 나는 누구인가? (1)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