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틈 — 조건만 보고 결혼한 부부
글 · 틈의 기록 | 2025.11.01

“사랑은 계산이 아닌 선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때로 그 선택조차 이해가 필요한 수학이 된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Ⅰ. 사랑의 시작, 혹은 계산의 시작
그들의 결혼은 낭만이 아닌 조건에서 출발했다. 안정적인 직업, 괜찮은 외모, 사회적으로 어울리는 조건들. 누가 봐도 ‘이성적인 선택’을 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성의 영역에서 시작된 결혼은, 감정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균열을 맞았다.
그는 신중했고, 그녀는 현실적이었다. 서로의 계산이 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피어났다. 이유를 찾기보다, 그들은 서로의 ‘합리성’을 방패로 삼았다.
Ⅱ. 감정 없는 이해, 이해 없는 감정
결혼은 함께 산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해석하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조건으로 연결된 관계는 그 언어를 잃기 쉽다. 서로의 표정은 읽지만, 마음은 해석하지 않는다.
그녀는 안정된 삶을 원했고, 그는 평온한 가정을 바랐다. 그러나 안정과 평온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다. 감정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이해하려는 척’이라는 차가운 형식뿐이었다.
Ⅲ. 관계의 균열, 인간의 틈
어느 날, 그는 문득 깨달았다. 대화의 주제가 늘 ‘계획’과 ‘효율’로만 이어지고 있음을. 그들의 삶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마음은 서로에게 닿지 않았다.
사랑이 없는 곳에 남은 것은, 역할과 의무로만 채워진 일상이었다. 그 틈은 감정의 결핍이 아니라, ‘이해의 부재’였다. 사람은 조건으로 연결될 수는 있지만, 마음은 조건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Ⅳ. 다시, 마음의 좌표를 찾다
시간이 지나 그들은 서로에게서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은 언제나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관계는 결국 ‘이해’에서 유지된다.
그는 그녀의 불안을 이해하려 했고, 그녀는 그의 침묵 속 외로움을 알아차렸다. 진심은 조건의 틀을 깨고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비로소 ‘사람’이 다시 보였다.
Ⅴ. 조건의 끝에서 피어나는 진심
사랑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의지에서 자란다. 조건이 무너진 자리에 남는 건 결국 마음뿐이다. 그 마음이 닿을 때, 관계는 비로소 인간적인 온도를 되찾는다.
그들은 이제 안다. 결혼이란 선택의 끝이 아니라, 서로의 틈을 알아가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Ⅵ. 결론— 인간의 틈에서 배우는 것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늘 어떤 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틈이 있기에, 관계는 계속 변화하고 성장한다. 완벽하지 않은 이해 속에서 우리는 진심을 배운다.
“사랑은 서로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견디는 일이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인간의 틈은 결함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여백이다. 그 여백이 있기에 사랑은 계속 자란다.
© 2025 틈의 기록 | 인간 관계의 경계에서 진심을 탐구하는 에세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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