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지 못한 마음의 거리 — 가까움과 멀어짐의 경계에서
글 · 틈의 기록 |
Ⅰ. 말이 사라진 자리
두 사람은 같은 방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 방 안엔 침묵이 깔려 있었다. 한쪽은 말을 삼켰고, 다른 한쪽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들은 대화보다 눈치로 감정을 읽고, 표정으로 마음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는 줄었고, 오해는 자랐다.
이별은 언제나 말로 선언되기 전에, 침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침묵은 종종 ‘괜찮다’는 말 뒤에 숨어 있다. “괜찮아”라는 말은 상대를 위한 배려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이해받지 못한 마음의 잔열이 남아 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서로의 마음을 천천히 밀어낸다.
Ⅱ. 가까움의 착각
우리는 가까이 있다고 해서 마음도 가까울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진짜 거리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위치에 있다. 한쪽이 관계의 중심에서 ‘우리’를 생각할 때, 다른 한쪽은 이미 ‘나’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고 있을 수도 있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은 그렇게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멀어진다.
지현은 오랜 친구 수아와의 관계에서 그 거리를 느꼈다. 함께한 시간은 길었지만, 대화는 점점 짧아졌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빈도도 줄었다. 문제는 싸움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적이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웃었지만, 그 웃음은 과거의 기억에 의존한 습관에 가까웠다.
Ⅲ. 감정의 틈이 만들어지는 순간
마음의 거리는 단 한 번의 오해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된 작은 단절들로 쌓인다. “괜찮아”로 덮은 순간, “다음에 이야기하자”로 미룬 대화들, 그리고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로 타협한 감정들. 이런 순간들이 쌓일수록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는 척’하며, 동시에 ‘단념’하게 된다.
그 단념이 바로 마음의 거리를 만든다. 관계는 유지되지만, 감정의 진심은 닿지 않는다. 겉으로는 여전히 친밀하지만, 내면은 서로를 향해 조금씩 문을 닫는다. 이때 생기는 간극은 대화로도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그 거리를 단단하게 다져놓았기 때문이다.
Ⅳ. 그럼에도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진심을 말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말하는 순간, 관계가 변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는 유지되기 위해 솔직함을 포기한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일종의 방어막이 되고, 침묵은 관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전략이 된다.
그러나 그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만든 ‘정적의 협정’일 뿐이다. 그렇게 유지된 관계는 언젠가, 아무 말 없이 무너진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 균열은 시작되어 있었다.
Ⅴ. 틈을 마주하는 용기
말하지 못한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먼저 그 거리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이에 틈이 생긴 것 같아.” 이 한 문장은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회복의 시작이 된다. 감정은 숨길수록 식어가고, 말할수록 온도를 되찾는다.
때로는 상대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남기는 것도 방법이 된다. 글은 서툴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어로 감정을 꺼내는 일은 관계의 체온을 다시 느끼는 과정이다. 그것은 완벽한 화해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의 증거다.
Ⅵ. 틈은 반드시 나쁘지 않다
나는 사람 사이의 틈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틈은 각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여백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틈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서로를 다시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지 못한 마음은 언젠가,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다. 그 표현이 늦더라도, 진심은 결국 닿는다.
Ⅶ. 결말하지 못한 마음에도 온도는 있다
마음의 거리는 단절이 아니라, 이해의 여백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여백을 채우려는 대신,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면, 관계는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표현되지 못한 사랑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남긴 거리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향하고 있다.”
© 2025 틈의 기록 | 인간 사이의 틈을 탐구하는 에세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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