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의 숫자와 정체의 감각
틈의 기록 · 2026년 1월 20일
“우리는 숫자가 말해주는 희망보다, 일상이 느끼는 속도를 더 오래 기억한다.”
Ⅰ. 상향된 전망이라는 신호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반도체 수출 회복과 글로벌 교역 여건의 부분적 개선, 그리고 정책적 대응이 일정 부분 효과를 내고 있다는 판단을 반영한 결과다.
전망치 상향이라는 표현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들린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저성장’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0.1%p의 변화조차 의미 있는 반등처럼 해석된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지 방향을 말해줄 뿐, 속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1.9%라는 수치는 회복의 신호이자, 동시에 기대치를 낮춘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Ⅱ. 숫자 뒤에 숨은 체감의 간극
성장률 전망이 발표된 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현장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회복과 내수 기반 산업의 체감 온도 차는 여전히 크다.
경제지표가 개선되었다는 뉴스와 달리, 가계는 고금리와 높은 생활비 부담 속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다. 기업 역시 투자에 신중해지고, 고용은 늘기보다 유지에 가까운 선택을 한다.
이처럼 성장률이라는 평균값은 경제 전체를 설명하지만, 개별 삶의 무게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정체의 감각은 숫자가 아닌 일상에서 먼저 감지된다.
“평균은 언제나 맞지만, 누구의 이야기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Ⅲ. 구조적 저성장이라는 오래된 질문
IMF 역시 이번 전망에서 구조적 저성장 우려를 함께 언급했다. 인구 감소, 생산성 둔화, 산업 구조의 경직성은 단기간의 경기 반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노동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는 소비와 투자, 재정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반등하더라도, 장기적 성장 잠재력은 점점 낮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저성장은 예고된 미래였고, 이제는 관리의 대상이 된 현재다.
Ⅳ. 정책은 무엇을 회복하려 하는가
정부와 정책 당국은 성장률 수치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려 한다. 이는 필요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정책과,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은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 단기 성장을 위한 재정·통화 정책은 중장기 구조 개혁과 충돌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장 그 자체보다, 어떤 성장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속도를 높일 것인지, 방향을 바꿀 것인지는 전혀 다른 판단을 요구한다.
Ⅴ. 성장 이후를 상상하는 일
1.9%라는 수치는 희망의 언어이자, 동시에 경고의 언어다. 우리는 더 이상 고성장을 전제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성장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일이다. 낮은 성장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 성과보다 지속을 중시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성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숫자가 채우지 못하는 삶의 틈에서, 우리는 다른 답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
“성장이 멈춘 자리에 남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지켜냈는가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