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닮아가던 순간, 갈라지는 길
Ⅰ. 가장 이른 배움
우리는 모방을 통해 세상에 발을 들인다. 말보다 먼저 표정을 따라 하고, 이유를 알기 전부터 태도를 베낀다. 모방의 대상은 언제나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아이에게 그 대상은 거의 언제나 부모다.
이때의 모방은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식에 가깝다. 닮아야 안전하고, 닮아야 관계가 유지된다. 그래서 모방은 배움이기 이전에 유대의 언어다.
“아이에게 모방은 학습이 아니라 연결의 방식이다.”
Ⅱ. 어긋남을 인식하는 순간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어긋남이 생긴다. 부모가 좋아하는 것과 아이가 끌리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아이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극적이지 않다. 대개는 사소하다. 입고 싶지 않은 옷, 가고 싶지 않은 장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 한마디.
그러나 이 작은 어긋남이 내면의 첫 균열을 만든다. 모방이 멈추는 지점이 아니라, 모방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Ⅲ. 개입이 남기는 흔적
이 시점에서 어른의 태도는 중요해진다. 부모 역시 자신이 이루지 못한 모습, 지키고 싶은 가치, 바라는 미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바람이 아이의 균열 위로 너무 빠르게 덮일 때 발생한다. 아이는 자신이 느낀 다름을 설명하기 전에 포기하는 법부터 배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점점 안전한 선택만 남긴다. 갈등을 피하는 대신, 자신의 취향을 접는다.
“착한 아이는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갈등을 스스로 삼켜버린 아이일지도 모른다.”
Ⅳ. 모방이 창조로 넘어가지 못할 때
모방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모방이 끝나는 지점이다. 어떤 아이는 모방한 것을 분해하고, 일부를 덜어내며, 자신의 감각과 결합한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모방을 완성형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정답이 주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허용된 시간의 차이다. 머뭇거릴 수 있었는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틀려도 괜찮았는지의 차이.
Ⅴ. 남겨진 질문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닮아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닮은 뒤에, 무엇을 덜어냈는지. 무엇을 끝내 가져오지 않았는지.
모방은 창조의 재료가 될 수도 있고, 창조를 가로막는 완성이 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은 언제나 조용하다. 아이의 아주 작은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는 언제, 모방을 끝내고 자신의 것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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