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틈 — 겸손이라는 이름의 다른 기준
글 · 틈의 기록 | 2025.12.30
“겸손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올바른 자리에 두는 것이다.”
— 공자(Confucius)
Ⅰ. 겸손이라는 미덕에서 시작된 질문
동양과 서양의 도덕적 관점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를 하나만 꼽는다면, 나는 종종 ‘겸손’이라는 태도를 떠올린다. 겸손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행위다. 하지만 그 ‘낮춤’이 의미하는 바는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어떤 사회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미덕이 되고, 또 다른 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불성실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전혀 다른 기준 위에 서 있는 셈이다.
Ⅱ. 한 교실에서 드러난 두 가지 자기 평가
미국의 한 대학교 강의실에서 있었던 장면이다. 교수의 질문에 한 한국 학생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자신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그러나 그의 성적은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평균 80점 이상이었다. 객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못한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같은 질문을 받은 서양권 학생으로 보이는 다른 학생은 자신은 공부를 잘한다고 말한다. 다만 구체적인 점수를 묻자, 그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인간은 사실을 말하는 존재이기보다, 자신이 속한 규범을 말하는 존재다.”
—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Ⅲ. 점수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이었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누가 더 잘했느냐가 아니다. 두 학생 모두 자신의 기준에 따라 솔직하게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학생에게 평가의 기준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잘했는가’였다. 높은 점수임에도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는 개인의 성취를 공동의 평균 속에 놓으려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반면 다른 학생에게 기준은 ‘나 스스로의 만족’에 가까웠다.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의 판단이 먼저 놓이는 구조다. 점수를 밝히지 않은 선택 역시, 그 기준이 외부에 있지 않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Ⅳ. 태도의 차이가 문화를 만든다
이러한 작은 태도의 차이는 결국 문화의 방향을 바꾼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배려가 되는 사회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책임이 되는 사회.
전자는 집단 안에서의 조화를 우선시하고, 후자는 개인의 명확한 위치와 역할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서로 다른 기준 위에서 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을 뿐이다.
Ⅴ. 틈에서 다시 묻게 되는 질문
나는 이 사례를 통해 하나의 틈을 본다. 겸손이라는 같은 단어 아래, 서로 다른 세계가 조용히 엇갈리는 지점이다.
우리는 종종 상대의 태도를 오해한다. 지나치게 자신을 낮춘다고, 혹은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그 태도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그가 오래 살아온 기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 틈을 이해하려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하기보다 다른 기준으로 살아온 인간을 이해하는 쪽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도덕은 보편적인 규칙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태도의 집합이다.”
— 막스 베버(Max Weber)
© 2025 틈의 기록 | 인간과 문화 사이의 틈을 사유하는 ‘틈에서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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