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의 틈 — ‘행복’이라는 개념의 모순
글 · 틈의 기록 | 2026.01.13
“행복한 삶이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견딜 수 있는 삶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Ⅰ. 우리는 왜 행복을 설명할수록 불행해질까
우리는 너무 쉽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 “그래서 행복이 뭐야?”라고 물으면 대답은 금세 궁색해진다.
좋은 직장, 안정적인 관계, 충분한 돈. 흔히 말하는 행복의 조건들을 떠올려보지만 그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조차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여기서 하나의 틈이 드러난다. 우리는 행복을 분명히 원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Ⅱ. 휴가 중에도 쉬지 못하는 마음
오랫동안 기다리던 휴가를 떠난 사람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 속 풍경은 분명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휴대폰을 확인한다. 회사 메일이 오지 않았는지, 자신이 없는 사이 일이 더 꼬이지는 않았는지. 쉬고 있으면서도 쉬지 못하는 상태.
이 사실은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행복한 조건 안에 있으면서도 불안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행복이란 특정한 상태라기보다, 그 상태를 허락하는 마음의 여백과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Ⅲ. 행복은 목표가 되는 순간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식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달성해야 할 목표처럼 취급된다.
목표가 된 행복은 비교를 낳고, 비교는 결핍을 만든다. “나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판단은 지금 이 순간을 끊임없이 탈락시킨다.
이 지점에서 철학의 틈이 생긴다. 행복을 붙잡으려 할수록, 우리는 현재의 삶과 멀어진다.
Ⅳ. 남의 행복을 기준으로 삼을 때
SNS 속에서 누군가는 늘 웃고 있다. 성공, 여행, 관계, 성취. 그 장면들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하지만 그 장면은 편집된 결과라고 보면 된다. 행복해 보이는 한 컷과 그 이면의 수많은 맥락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은 공백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공백을 무시한 채 타인의 행복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이때의 불행은 삶의 문제가 아니라 비교가 만들어낸 인식의 틈에서 발생한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다.”
— 에픽테토스(Epictetus)
Ⅴ. 결론 — 행복은 틈에서 다시 정의된다
행복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삶과 삶 사이, 기대와 현실 사이에 생기는 작은 틈 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행복은 붙잡을수록 사라지고, 허용할수록 가까워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 그 여백이 바로 행복의 자리다.
철학의 틈은 묻는다. “행복한가?”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질문을 바꾸는 순간, 행복이라는 개념의 모순은 우리 삶을 압박하는 기준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틈이 된다.
© 2025 틈의 기록 | 일상에서 철학의 질문을 발견하는 ‘철학의 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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