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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의 사유

다름의 단계 - 이해에서 인정까지

by Viaschein 2026. 1. 22.

다름의 단계 — 이해에서 인정까지

틈의 기록 · 2026-01-22

Ⅰ. 같은 인생은 없다는 사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산다. 같은 집안, 같은 시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해도 어느 순간부터 삶은 미묘하게 갈라진다. 그 갈림은 선택의 차이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사소하게 넘긴 한 장면을 누군가는 오래 붙잡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 비슷한 결론을 향해 걷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안정된 직장, 무난한 관계, 사회가 말하는 ‘괜찮은 삶’. 다름은 출발점에만 허용되고, 도착지는 늘 하나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 글은 그 도착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사람 사이의 틈**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틈을 마주할 때 우리가 거쳐야 할 세 가지 단계에 관한 이야기다.

Ⅱ. 이해 —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

회사에서 한 동료와 의견이 크게 엇갈린 적이 있었다. 회의실에서 그는 내 제안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설명하고 싶었고, 설득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은 말을 줄였다. 회의가 끝난 뒤 커피를 마시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같은 방식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그 기억이 아직도 그를 조심스럽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나는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해는 상대를 내 편으로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잠시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그날 처음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Ⅲ. 수용 — 불편함을 견디는 시간

이해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불편함이다. 상대의 생각이 말이 된다는 걸 알게 되면, 내 생각이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떠오른다.

그 동료와의 협업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끝내 같은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의 선택은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그에게 나는 여전히 성급해 보였을 것이다.

수용은 그 간극을 억지로 좁히지 않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판단이 존재해도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버텨내는 과정. 내 기준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며 함께 일하는 시간이었다.

Ⅳ. 인정 — 바꾸려 하지 않는 태도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설득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내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는 그 나름의 경험과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고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인정은 관계를 단순하게 만든다.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난 뒤에야 우리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두는 법을 배운다. 그때서야 다름은 갈등이 아니라 거리로 남는다.

그 거리는 멀어짐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Ⅴ. 틈에서 답을 찾다

사람 사이의 문제는 종종 다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해는 틈을 발견하는 일이고, 수용은 그 틈이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연습이며, 인정은 그 틈을 없애려 하지 않는 선택이다.

‘틈에서 답을 찾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같아지려 애쓰는 대신,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일.

답은 늘 틈 너머에 있다. 그 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단단한 관계와 조금 덜 날카로운 세계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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