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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의 사유

취향은 언제부터 설명이 필요해졌는가

by Viaschein 2026. 2. 3.

취향은 언제부터 설명이 필요해졌는가

틈의 기록 · 2026-02-03
“누군가의 취향은 그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방식일 뿐이다.”

Ⅰ. 좋아한다는 말 앞에 생긴 ‘근거’라는 틈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 이유를 함께 내놓아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가 좋으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음악이 좋으면 장르적 분석을, 취향을 말하면 그 취향을 ‘증명’할 수 있는 언어를 동반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시대 말이다.

하지만 ‘좋다’는 감정은 원래 설명의 언어보다 체온의 언어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왜’를 요구받는다. 어쩌면 이 질문은 취향을 묻는 것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려는 사회적 신호는 아닐까.

Ⅱ. 취향이 곧 정체성이 된 사회

누군가의 취향은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보여주는 작은 창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정체성 자체로 취급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어떤 인간인가’를 규정하고, 그 정의가 곧 관계의 간격까지도 결정짓는다.

취향은 더 이상 저녁 시간의 소소한 취미 이야기가 아니다. 취향은 능력, 사회성, 교양, 세계관까지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취향을 설명하고, 방어하고, 확장하려 애쓴다.

그러나 인간의 취향은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떤 결핍과 성장의 궤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혹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취향’이 되지는 않는다.

Ⅲ. 설명의 시대가 만들어낸 조용한 피로

‘취향을 설명해야 하는 시대’는 결국 ‘나는 이래도 괜찮은 사람이다’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스스로를 좀 더 매끄럽게 보이기 위해 취향을 과장하거나 꾸미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오해받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설명은 때때로 관계를 가까이 가져오지만, 지나친 설명은 오히려 마음을 멀어지게 한다.

Ⅳ. 취향의 시작은 이해가 아니라 ‘머물기’였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은 대부분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그 앞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그것이 나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취향은 원래 그렇게 ‘머무는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정말로 취향에는 설명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설명을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가 너무 오래 노출된 것일까?

Ⅴ. 다시, 침묵으로도 충분한 취향

취향은 원래 자신의 삶을 가만히 비추는 등불 같은 것이었다. 그 등불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놓인 것이 아니라, 내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두었던 작은 빛이었다.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져도 괜찮다. 배경설명 없이도, 기준 없이도, 누군가의 승인 없이도 ‘그냥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런 취향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설명보다 더 진실한 삶을 살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이유가 없을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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